Global Workplace Trends

조용히 일하는 직원 vs. 조용히 내보내려는 회사, 법은 누구 편일까?

노동법 기업 실무 2026. 7. 13. 01:48

코로나가 막바지던 2022년 여름, 뉴욕의 20대 엔지니어가 틱톡에 올린 짧은 영상 하나가 전 세계 HR 담당자들의 회의 안건을 바꿔놓았습니다.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Work is not your life)
당신의 가치가 업무 성과로 정의되지 않는다(Your Worth is not defined by your productive output)"

 

함께 퍼진 아래 영상이 바로 quiet quitting(조용한 퇴직)이라는 말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사표를 내는 게 아닙니다. 회사는 계속 다닙니다. 다만 계약된 시간에, 계약된 업무만, 딱 요구되는 수준까지만 합니다.

 

tiktok zaidleppelin 영상 (2022.7.26)

 

갤럽 조사에서는 미국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이 상태에 해당한다는 결과까지 나왔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현상은 유행어 단계를 지나 하나의 근무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최근 해외 HR 매체들이 주목하는 건 그 다음 국면입니다. 회사 쪽의 대응, 이른바 quiet firing(조용한 해고)입니다.

 

직원 쪽에서는 "번아웃 시대에 건강한 경계 설정"이라는 옹호가 많습니다. 정당한 보상 없는 초과 헌신을 거절하는 것뿐이라는 겁니다. 반면 경영진 쪽에서는 "월급은 그대로 받으면서 몰입만 빼는 것"이라는 불만이 나옵니다. 그래서 일부 회사들은 정면 대응 대신 우회로를 택합니다. 핵심 프로젝트에서 슬쩍 빼고, 회의에서 제외하고, 애매한 업무로 돌리고. 스스로 나가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한국이라고 다를까요

 

한 HR 테크기업의 한국인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51.7%가 스스로 조용한 퇴직 상태라고 답했습니다. 현직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양쪽의 질문을 다 받습니다. 회사 쪽에서는 딱 최소한만 일하는 직원, 징계할 수 있을까요? 저성과를 이유로 해고하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 한편에선 직원이 묻습니다. 어느 날부터 제 업무가 하나씩 사라지는데, 이거 나가라는 뜻 아닌가요?

 

조용한 퇴직은 해고 사유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조용한 해고는 괴롭힘이 되기 쉽습니다.

 

이 비대칭이 오늘 글의 핵심입니다.

 


 

결이 갈린 두 사건

 

최근 판례를 보면 결이 정반대로 갈린 사례들이 나란히 나옵니다.

 

한 사건에서는, 징계해고됐다가 구제절차를 거쳐 복직한 직원에게 회사가 새 직책만 형식적으로 부여하고 실질적인 업무는 주지 않았습니다. 업무회의와 단체 채팅방에서도 뺐고, 그 와중에 권고사직을 권유했습니다. 법원은 "스스로 사직하게 할 목적의 업무 배제"라고 보고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습니다.

 

다른 사건에서는, 거래처와 다툼이 있던 직원을 상사가 거래처를 만나지 않는 현장정리 업무로 일시 변경했습니다. 법원은 괴롭힘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업무 변경에 이유가 있었고, 일시적이었고, 같은 직급의 다른 직원도 해본 업무였다는 점이 근거였습니다.

 

같은 '업무에서 빼기'인데 한쪽은 괴롭힘, 한쪽은 정당한 인사권입니다. 무엇이 갈랐을까요.

 

 


 

성실의무의 하한선은 생각보다 낮은 곳에 있다

 

답을 찾기 전에, 많은 인사 담당자들이 놓치는 지점부터 하나 짚겠습니다. 조용한 퇴직 자체는 대부분 징계 사유가 안 됩니다.

 

근로계약상 직원에게는 성실하게 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의무가 요구하는 건 '주어진 업무를 정해진 수준으로 수행하는 것'이지, '기대 이상의 헌신'이 아닙니다. 정시 퇴근, 회식 불참, 승진 욕심 없음, 시키지 않은 일 안 하기. 이 중 어느 것도 그 자체로는 계약 위반이 아닙니다. 회사가 아쉬워할 수는 있어도, 법이 개입할 하한선 위에 있는 겁니다.

 

문제는 그 하한선 아래로 내려갔을 때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기준이 꽤 엄격합니다.

 

대법원의 기준은 한 줄로 요약됩니다. 다른 직원보다 상대적으로 못하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상당 기간 최소한의 기대치에도 미치지 못하고 개선 가능성도 없어야 해고가 정당하다는 겁니다(대법원 2022. 9. 15. 선고 2018다251486 판결). 이 사건에서는 취업규칙에 "대기발령 후 3개월 무보직이면 해고"라는 자동 조항까지 있었는데도, 대법원은 그 조항에 따른 해고 역시 같은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규정을 만들어놨다고 기준이 낮아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럼 PIP(성과개선 프로그램)를 거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실제로 PIP 후 해고가 유효하다고 인정된 사례들이 있습니다. 다만 그 사례들의 공통점을 보면, 평가 목표와 과제를 직원과 협의해 정했고, 근태나 납기 같은 객관적 지표로 평가했고, 교육과 개선 기회를 실제로 제공했고, 그런데도 수년간 일관되게 최하위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평가가 주관적이거나 개선 기회가 형식적이면 PIP는 해고의 근거가 아니라 부당해고의 증거가 됩니다.

 

 


 

진짜 위험한 건 저성과가 아니라 '조용한 해고' 쪽이다

 

그래서 일부 회사는 해고라는 정공법 대신 앞서 본 우회로를 택합니다. 업무에서 빼고, 애매한 자리로 돌리고, 분위기로 밀어내는 방식. 그런데 한국법에서는 이쪽이 훨씬 위험합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여기서 작동합니다. 판단이 갈리는 지점은 결국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느냐인데, 판례 동향을 보면 축이 비교적 뚜렷합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기존 업무에서 완전히 배제했는가. 그 배제가 장기간 이어졌는가. 권고사직 권유 같은 추가 조치가 병행됐는가. 이 세 가지가 겹칠수록 괴롭힘 인정 가능성이 올라가고, 과태료와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앞의 두 사례로 돌아가 보면 이 기준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복직자 사건은 세 축이 전부 있었습니다. 사유 없는 완전 배제, 장기간, 권고사직 병행. 후자인 현장정리 사건은 세 축이 전부 없었습니다. 사유 있음, 일시적, 추가 조치 없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업무 배제가 사직을 유도할 목적이었다는 사정이 드러나면, 그 뒤에 받아낸 사직서는 '진의 아닌 의사표시'나 실질적 해고로 다투어질 여지가 생깁니다. 조용히 내보내려던 것이 부당해고 사건으로 돌아오는 경로입니다.

 

 


 

조용한 퇴직 직원을 마주했다면

 

정리하면 회사의 선택지는 두 갈래인데, 방향이 명확합니다. 감정적으로 밀어내는 쪽은 리스크를 쌓는 길이고, 기록이 남는 절차를 밟는 쪽이 방어력을 쌓는 길입니다.

 

평가 기준을 객관화해 두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저성과를 다투게 되는 순간 회사가 제시할 수 있는 건 결국 평가의 공정성뿐입니다.

PIP를 운영한다면 퇴출 수순이 아니라 실제 개선 기회로 설계하는 편이 훨씬 방어력이 있습니다. 협의된 목표, 객관적 지표, 실질적인 교육 기회. 역설적이지만 '진짜 개선 프로그램'이 가장 안전한 해고 근거가 됩니다.

업무 조정이 필요하다면 사유를 기록으로 남기고, 일시적으로, 실질 업무를 유지한 채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완전한 배제 상태가 길어지는 순간 인사권은 괴롭힘 쪽으로 기울기 시작합니다.

 

직원 입장이라면 반대로, 업무 배제가 시작된 시점과 내용, 남아 있는 업무, 권고사직 언급 여부를 기록해 두는 것이 이후 어떤 절차에서든 출발점이 됩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되는 분들

 

· 조용한 퇴직 성향의 팀원을 두고 대응 방향을 고민 중인 HR 담당자
· 저성과자 프로그램(PIP) 도입·운영을 검토 중인 경영진
· 업무 배제·전환배치가 어디까지 정당한 인사권인지 궁금한 관리자
· 어느 날부터 회의와 업무에서 빠지기 시작한 직원 본인

 

시리즈 — 세계는 이렇게 일한다, 한국 노동법은 어떻게 답할까
해외에서 화제가 된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한국 노무 실무의 언어로 번역하는 시리즈입니다. 다음 편에서 반향있는 주제로 돌아오겠습니다.

 

2026.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