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4. 18:11ㆍ직장 내 괴롭힘
직장 내 괴롭힘 조사의 어려움은 생각보다 훨씬 초기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신고가 접수된 순간, 사내 담당자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첫 번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가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습니다. 제도가 도입된 첫 해와 비교하면 6배 가까이 증가했고, 지금도 늘고 있습니다.
신고가 늘어나는 속도만큼 기업 내부의 조사 역량이 함께 성장했는가?
하는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신고가 들어오면, 첫 질문부터 막힌다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정비된 기업의 경우,
- 신고가 접수되면 인사나 고충 처리, 감사 담당자가 먼저 피해자와 면담해 진행 의사를 확인하고,
- 분리 조치 여부를 판단한 뒤,
- 조사위원회 구성 등 정식 절차로 넘어가는 흐름이 잡혀 있습니다.
즉, 흐름이 있으면 담당자도 그 흐름 안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기업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제가 만나본 담당자 중 한 분은, 신고가 들어오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이걸 인사팀장에게 바로 보고해야 하는가, 아니면 먼저 피해자를 만나야 하는가"를 혼자 고민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분리 조치를 해야 하는지, 외부 전문가를 부를 타이밍이 언제인지, 어느 것도 내부 기준이 없었던 겁니다. 이 첫 단계의 혼선이 나중에 "절차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피신고인의 주장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실무에서 드물지 않게 봅니다.

조사를 시작하고 나서 생기는 또 다른 문제
어렵게 조사를 시작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깁니다.
피해자가 제출한 자료 안에 신고 대상으로 특정하지 않은 또 다른 문제 상황이 담겨 있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담당자로서는 "신고하지 않은 내용은 우리 조사 범위가 아니다"라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상 조사 의무는 신고뿐 아니라 '인지'로도 발생합니다. 자료를 받아 읽은 순간 이미 인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걸 모르고 넘겼다가 나중에 과태료나 시정명령으로 돌아오는 유형이 실무에서 꾸준히 나옵니다.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도 담당자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피해자와 행위자의 진술이 다른 것은 당연하지만, 목격자마저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누가 더 구체적으로 말하는가'를 신빙성의 기준으로 삼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데, 실무에서 보면 이 판단이 종종 틀립니다.
심리적 충격을 받은 피해자가 오히려 날짜나 순서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행위자 쪽은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매우 일관된 진술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조사 초기에 피해자를 먼저 만나고 피해자 측 참고인들을 이어서 면담하는 관행적 순서도, 조사자가 의식하지 못한 채 피해자 중심의 그림을 먼저 형성하게 만드는 위험이 있습니다. 외부 전문가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여러 실무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조사가 끝난 뒤에도 남는 문제
조사를 마무리하고 나면 피해자가 결과를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에는 조사 결과 통지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말 없이 넘어가면 피해자는 "회사가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됩니다. 비밀유지 의무와 피해자의 알권리 사이에서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를 두고, 담당자가 혼자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조사가 끝났는데 오히려 더 어렵다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이 모든 상황이 담당자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 구조를 미리 만들어두는 것이 결국 조직과 담당자 모두를 보호한다는 것을 현장에서 거듭 확인합니다.
